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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가 가격을 깎으면, 우리 고객은 떠난다

경쟁사가 가격을 깎으면, 우리 고객은 떠난다

어제 또 세 명 떠났다 아침에 CRM 켰다. 붉은색 알림 세 개. 'Account Status: Churned'. 어제까지만 해도 유료 고객이었던 사람들이다. 이유는 다 같다. "경쟁사가 더 저렴해서요." 우리 제품 쓴 지 8개월 된 고객이다. 온보딩할 때 나한테 고맙다고 했다. "진짜 편하네요, 팀이 좋아해요." 그랬다. 근데 경쟁사가 30% 할인 프로모션 돌리니까 바로 갈아탔다. 전화했다. "혹시 불편하신 점이 있으셨나요?" 물었다. "아뇨, 제품은 좋았어요. 근데 가격이..." 대답이 이거다. 8개월 쌓인 데이터, 팀원들이 익숙해진 UI, 다 버리고 간다. 2만원 차이 때문에. 오전 10시부터 콜드콜 시작했다. 50통 돌렸다. 관심 있다는 곳 8군데. 근데 다들 마지막에 같은 질문 한다. "A사랑 가격 비교하면 어떻게 돼요?" A사. 우리 제품보다 기능은 반인데 가격은 3분의 2다. 나는 경쟁사 가격표를 다 외운다. A사, B사, C사. 각자 어떤 프로모션 돌리는지, 어떤 플랜이 얼마인지. 영업하려면 알아야 한다. 고객이 물어보면 바로 대답해야 한다. "네, A사는 유저당 월 8000원이고요, 저희는 12000원입니다. 대신 저희는..." 대신 뭐? 기능이 더 많다? 고객 지원이 빠르다? 그거 다 들으면서도 고개 끄덕이다가 결국 "일단 검토해보고 연락드릴게요" 한다. 그리고 안 온다. 연락.가격표를 외우는 영업자 점심시간. 여자친구랑 같이 먹었다. 마케팅팀이라 리드 퀄리티 얘기 나왔다. "이번 달 들어온 리드 100개 중에 미팅까지 간 거 12개야. 그것도 다 가격 물어보고 잠수." 말했다. 여자친구가 웃었다. "그럼 우리 가격 낮추면 되잖아?" 나도 웃었다. "그럼 MRR 타겟은 누가 채워?" 이게 문제다. 가격 낮추면 전환율은 올라간다. 근데 단가 떨어지니까 목표 매출 못 채운다. 그럼 커미션 0원이다. 대표님은 "가격 경쟁 하지 마" 한다. "우리 제품 가치를 믿어라. 더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제품 기능 많다. UI도 깔끔하다. 고객 지원도 24시간이다. 근데 그걸 3분 통화로 어떻게 설득하냐고. 오후에 데모 미팅 두 건 있었다. 첫 번째 고객, 중소기업 팀장님. 우리 제품 시연 보여드렸다. 반응 좋았다. "오, 이거 좋네요. 우리 팀한테 딱인데." 그러더니 "근데 B사 쓰면 월 30만원인데, 여기는 50만원이네요?" 나는 준비된 멘트 쳤다. "네, 저희가 20만원 더 비싼 이유는요, 첫째 자동화 기능이 3배 많고, 둘째 API 연동이 무제한이고, 셋째..." 설명했다. 10분 동안. 팀장님은 고개 끄덕이면서 들었다. "알겠습니다. 내부 검토하고 연락드릴게요." 두 번째 미팅. 스타트업 대표님. 직원 15명. 딱 우리 타겟이다. 데모 끝나고 질문 받았다. "가격이 부담되네요. 할인 안 되나요?" 나는 "지금 연간 결제하시면 15% 할인 가능합니다" 했다. "그래도 C사보다 비싸네요." C사. 신생 업체다. 기능 별로 없다. 근데 가격이 우리 절반이다. "C사는 기능이 제한적이라..." 말하려는데 대표님이 끊었다. "일단 C사 써보고, 부족하면 갈아탈게요." 그렇게 미팅 끝났다. Churn Rate가 말해주는 것 저녁 6시. 세일즈팀 주간 회의. 매니저가 물었다. "이번 주 Churn 몇 건?" 우리 팀 다섯 명이서 대답했다. 나는 세 건. 팀원 A는 두 건. B는 네 건. 총 12건. 일주일에 12명 떠났다. MRR로 치면 140만원 날아갔다. 매니저가 한숨 쉬었다. "Churn 이유 분석했어?" 다들 같은 대답이다. "경쟁사 가격." A는 "한 고객은 우리 쓰다가 D사 프로모션 보고 갈아탔대요. 3개월 무료래요" 했다. 3개월 무료. 우리는 14일 무료 체험인데. 매니저가 말했다. "가격으로 온 고객은 가격으로 떠난다. 우리가 타겟팅을 잘못한 거야. 제품 가치를 이해하는 고객 찾아야 돼." 맞는 말이다. 근데 그게 어디 있냐고. 콜드콜 100통 돌려서 관심 있는 곳 5군데인데, 그 중에서 가격 안 물어보는 곳이 어딨어. 회의 끝나고 파이프라인 정리했다. 이번 달 전환 가능성 있는 리드 20개. 그 중 10개는 "가격 검토 중"이다. 검토 중. 이 단어 나오면 90%는 안 된다. 경쟁사 견적 받아서 비교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싼 데 찾으면 그쪽 간다. 남은 10개 중에서 실제로 전환될 건 3개 정도다. 근데 그것도 다음 달 넘어가면 모른다. 이번 달 MRR 타겟 2000만원인데 지금 1400만원 채웠다. 600만원 더 채워야 한다. 근데 Churn이 매주 140만원씩 나간다. 뛰어도 제자리다.가격 말고 뭘 팔아야 하나 퇴근하고 집 왔다. 원룸 책상에 앉았다. 노트북 켰다. 세일즈 북마크 폴더 열었다. "가격 경쟁에서 이기는 법", "가치 기반 판매", "프리미엄 포지셔닝" 같은 글들이다. 다 읽었다. 여러 번 읽었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책에서는 말한다. "ROI를 보여줘라. 당신 제품으로 고객이 얼마나 절약하는지 계산해라." 해봤다. 우리 제품 쓰면 업무 시간 20% 단축된다. 직원 10명 회사면 월 200시간 절약. 시급 2만원으로 치면 400만원 가치다. 우리 월 이용료 50만원. ROI 800%다. 이걸 고객한테 설명한다. "팀장님, 저희 제품 쓰시면 월 400만원 가치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고객은 "좋네요, 근데 E사는 30만원인데 여기는 50만원이네요?" 한다. ROI 계산 다 날아간다. 20만원 차이가 더 크다. "고객 성공 사례를 보여줘라"도 해봤다. 우리 쓰는 고객 중에 잘 되는 회사들 있다. 케이스 스터디 만들었다. PDF로 보내드린다. 읽는 사람 별로 없다. 읽어도 "그 회사는 규모가 커서 되는 거 아니에요?" 한다. "제품 차별점을 명확히 해라"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동화 기능이 경쟁사 대비 3배 많다. API 연동도 무제한이다. 커스터마이징도 된다. 근데 고객이 그걸 다 쓰냐? 중소기업은 기본 기능만 쓴다. 고급 기능은 안 쓴다. 그럼 가격 차이만 느껴진다. 나는 지금 뭘 파는 건가. 제품을 파는 건가, 가격표를 파는 건가. 고객은 우리 제품 기능을 보는 게 아니라 경쟁사 가격표를 본다. 내가 아무리 가치를 설명해도, 옆에서 누가 더 싼 가격 부르면 거기 간다. 제품 문제인가, 영업 문제인가 밤 11시. 침대에 누웠다. 천장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내 문제인가, 제품 문제인가. 내가 영업을 못하는 건가, 제품이 가격만큼 가치가 없는 건가. 솔직히 우리 제품 완벽하지 않다. 버그 있다. 가끔 느리다. 고객 요청한 기능 개발 느리다. 경쟁사는 빠르게 업데이트한다. 우리는 개발자 부족하다. 스타트업이니까. 그러니까 고객이 떠나는 거 아닌가. 근데 대표님은 "영업이 더 잘해야 한다"고 한다. "제품 가치를 제대로 전달 못 하는 거다. 더 많은 데모를 해라. 더 많은 콜을 해라." 맞다. 나도 안다. 근데 콜 100통 돌려도 미팅 5개고, 그 중에 전환은 1개다. 이게 내 탓인가. 마케팅팀은 "리드 퀄리티가 문제"라고 한다. "가격만 보는 리드 들어온다. 제대로 된 타겟팅 해야 한다." 맞다. 근데 B2C SaaS 시장 자체가 가격 민감하다. 개인 사업자, 소기업은 다 가격 본다. 예산 없다. 비싼 거 못 쓴다. 그럼 우리가 타겟을 바꿔야 하나. 대기업 가야 하나. 거기는 가격 덜 본다. 근데 대기업은 세일즈 사이클이 6개월이다. 우리는 그만큼 못 기다린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MRR 올려야 한다. 그래야 시리즈 A 받는다. 결국 악순환이다. 가격 내리면 전환율 오르지만 매출 못 채운다. 가격 유지하면 Churn 계속 난다. 제품 개선하려면 돈 필요한데 매출 안 나오면 못 쓴다. 고객은 계속 "경쟁사가 더 싸요" 한다.내일도 같은 질문을 듣겠지 내일 아침에 출근하면 CRM 켤 것이다. 또 Churn 알림 뜰지도 모른다. 콜드콜 돌릴 것이다. 50통, 100통. "안녕하세요, B2C영업입니다. 혹시 지금 협업툴 사용하시나요?" 물을 것이다. 관심 있다는 곳 나오면 데모 미팅 잡을 것이다. 우리 제품 보여줄 것이다. "이 기능 보세요, 이거 자동으로 됩니다. 시간 엄청 절약되죠?"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을 것이다.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유저당 월 12000원입니다. 연간 결제 시 15% 할인 가능합니다." 대답할 것이다. 그럼 고객이 물을 것이다. "F사는 8000원인데, 왜 더 비싼가요?" 나는 또 설명할 것이다. 기능, 지원, 가치. 10분 동안. 고객은 "검토해보고 연락드릴게요" 할 것이다. 나는 "네, 궁금하신 점 언제든 연락 주세요" 할 것이다. 그리고 CRM에 기록할 것이다. "Price concern. Comparing with competitors." 다음 주에 팔로업할 것이다. 아마 안 받을 것이다. 이게 내 일이다. 가격 경쟁 속에서 가치를 팔려고 하는 것. 경쟁사 가격표를 외우고, 우리가 왜 더 비싼지 설명하고, 그래도 떠나는 고객 보내는 것. Churn Rate 올라가는 걸 보면서, MRR 타겟 채우려고 더 많은 콜 돌리는 것. 가끔 생각한다. 경쟁사가 가격 낮추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만큼 가치를 못 만드는 게 문제 아닐까. 고객이 가격만 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격 이상의 경험을 못 주는 게 문제 아닐까. 근데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영업이다. 주어진 제품 팔아야 한다. 주어진 가격으로. 경쟁사가 더 싸도, 고객이 떠나도, 내일 또 전화 걸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B2C영업입니다." 3년 했다. 계속 이렇게 할 건가. 5년 후에도 같은 고민 하고 있을까. 경쟁사 가격표 외우고, Churn Rate 보고, "가격이 부담되네요" 듣고. 이게 맞나. 근데 오늘 오후에 한 고객이 전환했다. 3개월 고민하던 곳. "그래도 여기가 제일 안정적인 것 같아서요. 가격은 좀 비싸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을 것 같아요." 그 말 들을 때. 그때는 좋았다. 그래서 또 한다. 내일도.경쟁사가 가격 깎으면, 고객은 떠난다. 근데 남는 사람도 있다. 그 한 명 때문에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