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초가 두렵다: 지난달 Churn 분석 시간
- 04 Dec, 2025
월초가 두렵다: 지난달 Churn 분석 시간
10시 정각
사무실 문 열었다. 아직 아무도 없다. 월초 첫날은 항상 이렇다.
컴퓨터 켰다. CRM 로그인. Churn Report 탭 클릭.
떨린다.
지난달 떠난 고객 리스트가 뜬다. 12개사. MRR로 치면 180만원.
숨 참았다.

왜 떠났는지 읽는 시간
하나씩 열어본다. 취소 사유.
“타사 제품으로 이동” “예산 부족” “사용률 저조” “담당자 퇴사”
읽으면서 기억난다. 그 고객이.
3개월 전에 내가 전환시켰던 회사. 데모할 때 “완벽하네요” 했던 대표님. 두 달 쓰다가 갑자기 취소.
이유는 “예산”.
거짓말이다. 경쟁사가 20% 깎아줬을 거다.
패턴 찾기
엑셀 켰다. Churn 고객 데이터 복붙.
- 업종
- 직원 수
- 사용 기간
- 마지막 로그인
- 결제 플랜
정렬했다.
보인다.
5인 미만 회사가 8개. 사용 기간 2개월 이하가 7개. 마지막 로그인 2주 전이 9개.
결론은 명확하다.
온보딩 실패.
제품 쓰는 법을 몰라서 떠난 거다. 우리가 안 가르쳐줬다.

사용률 저조의 진실
CRM에서 또 본다. 사용률 데이터.
떠난 12개사. 지난 한 달간 평균 로그인 3.2회.
우리 평균은 주 5회다.
한 달에 3번 접속. 그럼 당연히 취소하지.
근데 왜 안 썼을까.
슬랙 히스토리 뒤졌다. 내가 보낸 메시지들.
“무료 체험 어떠셨어요?” “유료 전환 도와드릴게요!” “결제하시면 프리미엄 기능 쓰실 수 있어요.”
전환만 신경 썼다. ‘제대로 쓰고 계세요?’ 는 한 번도 안 물었다.
담당자 퇴사의 공포
제일 억울한 케이스.
스타트업 A사. 50인 규모. MRR 29만원.
3개월 잘 썼다. 로그인율도 높았다.
갑자기 취소. 이유: “담당자 퇴사”.
전화했다.
“아 그분 그만두셔서요. 새 담당자는 익숙한 툴 쓰고 싶대요.”
“인수인계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끊었다.
이게 SaaS다. 사람이 떠나면 제품도 떠난다.

경쟁사 이동의 패턴
“타사 제품으로 이동” 4건.
다 안다. 어디로 갔는지.
N사 협업툴. 우리보다 30% 싸다. 기능은 70% 수준.
근데 왜 갔을까.
전화해봤다. 솔직하게.
“가격이요. 그냥 가격.”
“기능은 불편하지 않으세요?”
“음… 조금요. 근데 돈이 더 중요해서요.”
끊고 생각했다.
우리 제품이 30% 더 나은가? 솔직히 모르겠다.
MRR 180만원의 의미
계산했다.
180만원 잃었다. 다시 채우려면?
신규 고객 12개사. 또는 기존 고객 업그레이드 18건.
한 달에?
불가능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타겟이 그렇다.
월초마다 똑같다. 채우면 새는 통.
이번 달 타겟 세우기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지난달 배운 것:
- 온보딩 강화 필요
- 2주 미로그인 시 연락
- 5인 미만은 성공 확률 낮음
- 담당자 변경 알림 받기
- 가격 경쟁력 없음
실행 가능한 것: 1, 2번만.
3번은 마케팅이 결정. 4번은 제품팀이 만들어야 함. 5번은 경영진 판단.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자주 연락하기.
썼다.
- 전환 후 1주일: 온보딩 콜
- 2주차: 사용 현황 체크
- 4주차: 피드백 요청
- 로그인 없으면 즉시 연락
실행 가능할까? 모르겠다.
고객 80개사. 이렇게 하려면 하루 10건씩 연락.
콜드콜에 데모에 팔로업에. 거기에 기존 고객까지.
불가능하다.
근데 안 하면 또 잃는다.
팀 회의 30분 전
매니저가 출근했다.
“Churn 어때?”
“180이요.”
“아…”
둘 다 말이 없다.
“분석했어?”
“네. 온보딩 문제요.”
“그럼 이번 달은?”
“케어 강화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화이트보드.
매니저가 봤다.
“현실적으로 가능해?”
“해야죠.”
“그래. 해보자.”
나갔다.
나 혼자 남았다.
11시 팀 회의
세일즈팀 5명 모였다.
매니저가 말했다.
“지난달 Churn 분석 공유할게요. B2C씨.”
발표했다.
데이터 보여줬다. 패턴 설명했다. 대책 제시했다.
팀원들 반응.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야 돼?” “CS팀 일 아니야?” “신규 영업도 바쁜데…”
알고 있다. 다 맞는 말이다.
근데 안 하면?
계속 잃는다.
매니저가 말했다.
“일단 이번 달만 해보자. 효과 보면 CS에 제안.”
타협안이다.
받아들였다.
회의 끝났다.
월초의 의미
매달 1일. 항상 똑같다.
지난달 실패 분석. 이번 달 계획. 불가능한 타겟.
3년째 반복.
왜 할까.
돈 때문? 반은 맞다.
근데 반은 아니다.
패턴이 보이는 게 좋다. 데이터로 문제를 찾는 것.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
비록 실행이 어려워도. 비록 다음 달에 또 잃어도.
조금씩 나아진다.
Churn Rate. 작년 이맘때 18%. 지금 14%.
4%p 줄었다.
이게 내가 한 거다.
오후 1시
점심 먹고 왔다.
CRM 켰다. 오늘 할 일.
- 신규 리드 10건 콜
- 무료 체험 5건 팔로업
- 유료 전환 3건 클로징
- 기존 고객 10건 체크
월초지만. 영업은 멈추지 않는다.
잃은 건 잃었다. 채워야 한다.
첫 번째 콜. 다이얼 눌렀다.
신호음.
받는다.
“안녕하세요. ○○ 협업툴 B2C입니다.”
시작이다.
월초는 항상 두렵다. 근데 안 보면 더 두렵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