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500 + 커미션 = 수익의 불안정성
- 06 Dec, 2025
연봉 4500 + 커미션 = 수익의 불안정성
월급날의 두 가지 시나리오
오늘 월급날이다. 통장 확인했다.
기본급 375만원 들어왔다. 세전 4500 나누기 12. 예상된 숫자다.
그리고 커미션 항목을 본다. 이게 문제다.
지난달 MRR 타겟 120% 달성. 커미션 180만원 추가. 실수령 500 넘는다.
그 전달? 타겟 85%. 커미션 0원. 기본급만 받았다.
두 달 차이가 180만원이다. 연봉이 같은 사람 맞나 싶다.

고정비는 고정이다. 월세 70만원, 통신비 8만원, 보험 15만원, 적금 50만원. 이것만 143만원이다.
커미션 없는 달엔 230만원으로 살아야 한다. 커미션 있으면 540만원 쓸 수 있다.
이게 같은 직장인가.
CRM 화면을 보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 CRM 켜기.
파이프라인 확인. 이번 달 예상 MRR 계산.
딜 스테이지별로 분류한다. Demo Scheduled 8개, Trial Started 12개, Negotiation 5개, Closed Won 3개.
전환율로 계산한다. Trial에서 유료 전환 25%. Negotiation에서 클로징 60%.
예상 MRR: 약 280만원. 타겟은 300만원.
20만원 부족하다. 커미션 경계선이다.

이 숫자가 내 다음 달 통장을 결정한다.
280 찍으면 커미션 0원. 300 넘으면 기본 60만원부터 시작.
320 찍으면 120만원. 350이면 200만원.
차이가 크다. 너무 크다.
그래서 매일 아침이 불안하다. 숫자 보면서 시작한다.
월초와 월말의 다른 멘탈
월초는 여유롭다. 30일이 남았다.
파이프라인 정리하고, 새 리드 받고, 콜드콜 천천히 한다.
“이번 달은 여유 있게 가자.” 이런 마음.

월말은 다르다. 특히 25일 넘어가면.
타겟까지 50만원 남았는데 딜이 안 닫힌다.
Trial 고객한테 전화 10번 건다. “결정 언제쯤 하실 수 있을까요?”
가격 네고 들어간 고객. “이번 주 안에 결제하시면 20% 할인 가능합니다.”
원래 안 주는 할인이다. 근데 커미션 생각하면 준다.
28일, 29일엔 CRM만 본다. 결제 알림 기다린다.
딸랑. 결제 완료 알림. MRR +35만원.
타겟 달성. 숨 쉰다.
이 롤러코스터를 매달 탄다.
커미션 0원이었던 3월
3월을 잊을 수 없다.
2월에 큰 딜 2개 클로징했다. 커미션 250만원 받았다.
“이 정도면 나도 잘하네?” 자신감 붙었다.
3월엔 방심했다. 콜드콜 횟수 줄었다. 파이프라인 관리 소홀했다.
Trial 고객 팔로업 늦었다. 경쟁사로 빠졌다.
큰 딜 하나 기대했는데 의사결정 다음 달로 미뤄졌다.
3월 25일. 예상 MRR 210만원. 타겟 300만원.
90만원 부족. 불가능한 숫자다.
결국 타겟 70% 달성. 커미션 0원.
4월 1일, 통장에 기본급만 들어왔다. 375만원.
그 달 카드값이 220만원이었다. 2월 커미션으로 펑펑 썼다.
적금 못 넣었다. 여자친구 생일 선물 다운그레이드했다.
“요즘 바빠?” 물었다. “응, 좀.” 거짓말이다. 돈이 없었다.
그 달이 제일 힘들었다.
여자친구가 물었다
“너 월급 얼마야?”
6개월 사귀고 처음 나온 질문이다.
“세전 4500.”
“오, 괜찮네?”
“근데 커미션 포함이야.”
“커미션? 얼마나 받는데?”
“달마다 달라. 0원일 때도 있고 200 넘을 때도 있고.”
표정이 묘해졌다.
“그럼 실제론 얼마 받는 건데?”
“올해 평균 내면… 세전 5300 정도?”
“평균이 의미 있어? 매달 다른데.”
할 말이 없었다.
맞다. 평균은 의미 없다. 매달 다르니까.
집 구할 때도 그랬다. 보증금 대출 상담.
“연봉 증명 서류 주세요.”
“여기요.”
“아, 커미션이 변동이네요. 기본급 기준으로 계산하겠습니다.”
한도가 확 줄었다.
안정적 소득으로 안 쳐준다. 당연하다. 나도 불안하니까.
타겟을 보는 두 가지 시선
우리 팀 미팅. 세일즈 리더가 말했다.
“다음 분기 타겟 상향합니다. MRR 300에서 350으로.”
팀원들 반응이 갈렸다.
옆자리 형은 웃었다. “좋지. 더 벌겠네.”
뒷자리 동생은 한숨 쉬었다. “300도 힘든데…”
나는? 복잡했다.
350 찍으면 커미션 더 받는다. 기본 60에서 80으로 올라간다.
근데 못 찍으면? 0원은 똑같다.
기준이 올라간 거다. 불안의 기준선이.
예전엔 280만 찍어도 “거의 다 했네” 였다.
이젠 330 찍어도 “20 모자라네” 다.
골대가 멀어졌다.
불안이 만드는 동기
역설적이다. 이 불안이 나를 움직인다.
커미션 0원 받은 4월. 5월엔 미쳤다.
콜드콜 하루 150통 했다. 손목 아팠다.
Trial 시작한 고객, 2일마다 팔로업 전화.
“혹시 사용하시면서 불편한 점 있으세요?”
데모 미팅 요청 오면 당일이라도 잡았다.
CRM 메모를 소설처럼 썼다. 고객 페인포인트 전부 기록.
경쟁사 제안 받았다는 고객. 밤 10시에 비교표 만들어서 보냈다.
5월 MRR: 380만원. 타겟 127%.
커미션 220만원 받았다.
“3월에 못 번 거 만회했다” 생각했다.
근데 이게 맞나? 위기가 와야 열심히 하는 거?
매달 이렇게 살 순 없다.
동기 선배는 대기업 갔다
대학 동기가 연락 왔다. “밥 먹자.”
만났다. 대기업 마케터 2년 차.
“요즘 어때?”
“그냥 그렇지. 너는?”
“나도 비슷.”
연봉 물어봤다. “5000.”
나랑 비슷하다. 내가 커미션 평균 내면.
“보너스는?”
“연 500% 보장. 200씩 두 번 나와.”
안정적이다. 예측 가능하다.
“너는 커미션 있다며?”
“응. 근데 달마다 달라.”
“그거 스트레스 아냐?”
“솔직히 좀.”
“우린 야근 많아도 월급은 정확해. 너는?”
“월급은 적은데 천장이 없어. 잘하면 더 벌어.”
“천장 뚫어봤어?”
”…가끔.”
솔직히 말하면 천장보단 바닥이 더 자주 보인다.
적금을 못 넣는 달
커미션 0원 달엔 적금을 못 넣는다.
50만원 자동이체 설정했다가 풀었다.
“이번 달은 패스.” 매번 이런다.
적금 통장 보면 빈 칸이 보인다. 3월, 6월, 9월.
커미션 못 받은 달이다.
재무설계사 친구가 물었다. “적금 왜 이렇게 빵꾸야?”
“돈이 없어서.”
“직장인인데?”
“영업이라 커미션이 변동이야.”
“그럼 기본급 기준으로 설계해야지.”
기본급으로만 살면? 저축 거의 못 한다.
커미션 받을 때 몰아서 저축한다. 비효율적이다.
결혼 자금 모으고 싶다. 목표 5000만원.
커미션 잘 받는 달에 100씩 넣는다. 못 받는 달엔 0원.
1년에 평균 600 정도 모인다. 8년 걸린다.
고정 소득이면? 매달 50씩, 5년이면 3000이다. 예측 가능하다.
숫자로 평가받는 삶
우리 회사는 투명하다. 너무 투명하다.
매주 월요일 전사 회의. 세일즈 대시보드 공개.
팀원별 MRR 달성률, 전환율, 파이프라인 금액.
다 보인다.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이번 주. 내 달성률 88%. 팀 평균 95%.
꼴찌다. 창피하다.
회의 끝나고 슬랙 DM 왔다.
“주연님, 이번 달 괜찮으세요? 도움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리더의 배려다. 근데 압박처럼 느껴진다.
“네, 괜찮습니다. 다음 주엔 올라갈 거예요.”
거짓말이다. 확신 없다.
점심 먹으러 가는데 팀원이 물었다.
“형, 이번 달 힘들어요?”
“응, 좀.”
“저도요. 큰 딜 하나가 다음 달로 밀렸어요.”
위로가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근데 이게 맞나? 서로 위로하면서 불안해하는 게?
커미션 받은 날의 허무함
타겟 120% 달성한 달. 커미션 180만원 받았다.
기뻤다. 당연히.
여자친구랑 좋은 레스토랑 갔다. 15만원짜리 코스.
“오늘 내가 쏜다.”
“오, 대박. 커미션 받았어?”
“응. 이번 달 잘했어.”
뿌듯했다. 일주일쯤.
그 다음 주. 월초가 됐다.
CRM 열었다. 파이프라인 텅 비었다.
지난달 딜 다 클로징했으니까. 당연하다.
다시 시작이다. 콜드콜부터.
“또 300 채워야 하네.”
허무했다.
지난달 180만원은? 이미 썼다. 카드값, 적금, 데이트.
이번 달은 또 0부터다.
매달 리셋. 끝이 없다.
3년 차가 보는 미래
동기들 만났다. 입사 동기 5명.
3명은 이직했다. SaaS 다른 회사, 컨설팅펌, 스타트업 마케터.
2명 남았다. 나랑 한 명.
“너희 왜 안 나가?”
“커미션이 좋아서.”
“진짜?”
“아니, 거짓말. 익숙해서.”
솔직한 대답이다.
이직하면? 또 새로 배워야 한다. 제품, 고객, 세일즈 프로세스.
처음 6개월은 커미션 못 받는다. 파이프라인 쌓는 시간.
차라리 여기서 하는 게 낫다. 알고 있으니까.
근데 5년 뒤는? 10년 뒤는?
계속 영업할까? 매달 이 불안 안고?
아니면 안정적인 길 찾을까? 기획, 매니징, 다른 직무?
대답이 없다. 아직.
이 불안의 가치
요즘 생각한다. 이 불안이 나쁘기만 한가?
대기업 다니는 친구. 연봉 5000, 보너스 400.
안정적이다. 근데 뭐가 다른가?
승진 누락되면? 연봉 5000에서 5년 정체.
나는? 못하면 4500, 잘하면 7000. 폭이 크다.
위험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이번 달 잘하면 다음 달 통장이 바뀐다. 즉각적이다.
회사 실적이랑 상관없다. 내가 찍은 숫자가 내 돈이다.
이게 영업의 매력 아닌가.
불안하다. 맞다.
근데 이 불안이 나를 움직인다. 안주 못 하게 만든다.
매달 배고프다. 그래서 매달 뛴다.
안정적 월급? 좋다.
근데 그게 나를 성장시킬까?
다음 달 1일
오늘 31일이다. 이번 달 마감.
최종 MRR: 315만원. 타겟 105%.
커미션 80만원 확정.
만족한다. 0원보단 낫다.
내일은 다시 1일이다.
파이프라인 비었다. 콜드콜부터 시작이다.
타겟 300만원. 또 채워야 한다.
불안하다. 여전히.
근데 CRM 켠다. 리드 리스트 본다.
“이번 달은 350 찍어보자.”
이 불안이 날 움직인다. 매번.
연봉 4500 + 커미션. 수익은 불안정하다. 근데 이 불안이 내 동력이다.
